출처: https://www.mk.co.kr/news/it/view/2019/05/371568/
수소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인근 건물의 유리창은 충격으로 산산조각 났다. 지난달 23일 강원도 강원테크노파크에서 발생한 수소탱크 폭발 사고는 수소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 수소 폭발로 인한 참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12월 울산 SK에너지 중질유 분해 공장에서 배관 설치 작업 중 수소가스가 누출돼 폭발했고, 이 사고로 1명이 숨졌다. 2003년에는 KAIST 실험실에서 고압 수소용기가 폭발해 박사과정 학생 1명이 숨지고 1명은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사고가 수소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에 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연일 “수소차, 수소저장탱크와 이번 폭발은 관련 없다”며 “수소는 안전하다”는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수소는 정말 안전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100% 안전한 에너지란 없다. 하지만 규정에 맞춰 사용하고 안전장치를 강화하면 100% 안전할 수 있는 게 수소에너지다.
수소에너지에 열광…문제는 `폭발`
원자번호 1번인 수소는 공기보다 가벼워 쉽게 흩어지는 만큼 과거에는 `기구(氣球)`에 주입해 하늘에 띄울 때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폭발로 인한 사고로 현재 기구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후 수소는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연료전지`는 1960년대 우주선에 적용됐고 가정용 연료로 범위가 확장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연료전지를 소형화해 차량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수소에 열광했다. 깨끗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폭발이 문제였다. 수소 농도가 4~75%인 상황에서 작은 불씨라도 에너지가 가해지면 수소 분자가 쪼개져 수소 원자가 된다. 이 수소 원자가 산소 분자와 부딪히면 산소 원자 1개와 수소 원자 1개가 만나 `라디칼(OH)`이 만들어진다. 남아 있는 수소 원자 1개가 또 다른 산소 분자를 깨뜨리면서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핵분열이 일어나듯 수소 분자가 깨지면서 주변 산소와 끊임없이 반응하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해 폭발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수소 농도가 4% 미만이면 수소 원자 숫자가 부족해서, 75% 이상이면 산소 원자가 부족해서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못한다. 수소의 폭발력은 상당하다. 수소 폭발은 마치 초음속 여객기가 지나갈 때 발생하는 `소닉붐`과 같은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이덕환 교수는 “강릉 사고 영상을 보면 폭발 뒤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수소폭발로 발생한 충격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은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안전책을 강구해왔다. 수소차 수소 저장용기를 철보다 강한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17가지 안전성 시험을 거치도록 했다. 이광훈 서울시립대 기계정보공학부 교수는 “수소차에는 7300t에 달하는 에펠탑을 올려놔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700기압 압력에도 견딜 수 있는 내압 용기가 들어가고 수소 저장용기로 사용되는 탄소섬유는 압력이 커질 경우 폭발하지 않고 찢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폭발 위험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수소충전소 역시 긴급차단장치와 같은 안전장치를 장착하고 있어 폭발 사고 위험은 거의 없다. 이광훈 교수는 “검사 기준에 맞게 통과한 용기에 수소를 저장한다면 일단 안전하다고 봐야 한다”며 “일본 도쿄의 경우 도심에 수소충전소가 위치해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연료전지발전소는 수소차보다 폭발 위험이 적다. 한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신기술연구소장은 “연료전지 발전소에서는 LGP 등에서 분리한 수소를 저장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산소와 반응시킨다”며 “수소 보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발 위험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 수소 폭발은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해 물을 분해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수소를 저장했다가 연료전지로 보내 전기를 생산하는 곳에서 발생했다. 정부 해명대로 수소차나 수소충전소와는 다른 설비다. 전문가들은 부실 시공으로 수소탱크가 고압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거나 수소 저장 과정에서 압축기 오작동, 관리 부주의로 인해 탱크 내 공기 유입 등이 폭발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종희 소장은 “수소가 상당한 양의 산소와 섞이면서 폭발 반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며 “수소를 생산하거나 운반·저장하는 과정에서 산소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덕환 교수는 “수소탱크에 수소를 고압으로 압축해 저장하는 만큼 수소탱크가 부실해 고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졌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폭발한 수소탱크는 1기당 4만ℓ(400t급)를 저장하는 대용량 탱크이다 보니 강판을 용접으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음매가 있어 상대적으로 폭발에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폭발한 3기 중 1기는 견딜 수 있는 압력이 12기압(bar) 수준으로 수소차 수소탱크의 8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